목종
목종은 고려 시대의 중요한 왕 중 한 명으로, 그의 정식 명칭은 고려의 제7대 대왕, 목종(穆宗)이다. 그의 시호는 선양대왕이라 불리며, 능호는 의릉이라고 한다.
본명은 송, 즉 왕송이며, 자는 효신으로 알려져 있다. 목종은 고려 제5대 왕인 경종과 헌애왕후 황보씨 사이의 자녀로 태어났으며, 왕자 시절에는 개령군(開寧君)이라는 봉호를 부여받았다.
고려 초기 왕실은 극단적인 족내혼, 즉 가까운 친척 간의 결혼이 일반적이었던 풍습을 따랐기 때문에, 목종의 가계도는 매우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목종의 모든 직계 선조인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는 모두 왕과 왕후였으며, 이러한 혈통은 목종 이전이나 이후의 어떤 왕도 갖고 있지 않았다. 목종의 증조모들은 지역적으로 유력한 호족 출신이었다.
목종의 부인인 선정왕후 역시 태조 왕건의 친손자인 홍덕원군의 딸이자, 고려 제4대 왕인 광종의 딸인 문덕왕후의 손녀였다.
이러한 배경은 목종의 가계도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탁월하고 뛰어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 그의 혈통과 가계는 고려 왕조의 역사 속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강력한 혈통적 정통성을 지닌 목종의 운명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그는 고려 왕조 역사상 처음으로 폐위되고, 유배를 당하며, 끝내는 시해당하는 비운의 운명을 맞이했다. 이는 목종이 갖고 있던 막강한 혈통적 정통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목종은 한국사에서 공식적으로 기록된 첫 게이 왕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 양성애자 성향을 가진 군주들은 다수 존재하지만, 목종은 동성애자 성향을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낸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전의 신라 시대 혜공왕 역시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의 경우 불교 설화적 뉘앙스가 짙은 기록에 의존하고 있으며, 혜공왕의 성향에 대한 기록은 주로 여성스러운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혜공왕이 동성애자라기보다는 트랜스젠더 혹은 양성애자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트랜스여성의 경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성으로 여기며, 이러한 경우 남성을 좋아한다면 이성애 취향으로 볼 수 있다.
목종과는 달리 혜공왕은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으로 여기며, 동성인 남성을 좋아하는 게이 성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목종 이후로 동성애 성향에 대한 언급이 있는 왕은 원 간섭기의 충선왕(제26대)이며, 그는 한 명의 남성 애인과 여러 명의 여성 애인을 두었던 양성애자였다.
제31대 공민왕에 대해서도 비슷한 언급이 있으나, 공민왕의 경우에는 고려사 기록이 조선 왕조의 건국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우창비왕설에 의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목종이나 충선왕과는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목종은 청년기에도 불구하고 여성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목종의 부인 선정왕후 유씨 외에는 다른 배우자가 없었다. 또한 후사가 없었던 것도 목종의 개인적인 특성과 연관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목종은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후사에 대한 걱정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사실은 당시 사회의 가부장적 구조와 목종의 개인적 성향 사이의 긴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